해운대
두산위브더제니스 Interview

  • “항상 ‘최고’라는 단어가
     따라다녔던
     모든 면에서
     최고의 현장이었어요.”

  • 이우영 부장
    (현, 울진읍남위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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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무 당시 직급 및 담당업무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저는 2008년 8월 과장으로 해운대 두산위브더제니스 현장에 전입해 공사팀 업무를 수행했고, 2011년 6월 차장으로 승진을 했습니다. 성공적인 준공 후 2011년 12월부터 입주를 시작했는데 2015년 10월까지 현장에 상주하면서 만 4년 동안 고객서비스팀 업무도 수행했습니다.
공사 당시 현장과 주변의 모습이 어떠했는지 말씀해 주세요.
부산의 강남구라고 불리는 해운대구 우동 마린시티의 모습은 현재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주변 상권 개발이 현재 훨씬 더 많이 진행된 상태입니다. 그리고 마린시티의 위상이 초고층 주거건축물을 시공한 두산건설과 HDC로 인해 국내 최고라고 자부할 수 있는 모습으로 변화한 것 같습니다. 해운대 백사장이나 광안대교 앞 바다에서 요트를 타고 바라보는 풍경은 세계 유명 도시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 지역을 훤히 꿰뚫고 있는 제 눈에만 보이는건지 모르겠지만 국내 자동차 광고 대부분이 광안대교를 달리면서 마린시티의 스카이라인을 비추는 모습으로 방영되고 있어 볼 때마다 뿌듯한 느낌이 듭니다.
현장 조직 및 분위기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여느 현장과 마찬가지로 공사, 공무, 기계, 전기, 안전, 품질, 관리파트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별도의 설계파트에 구조기술자, 건축사, 콘크리트 전문가, 색채 디자인파트가 있어서 초고층 주거건축물의 모든 분야를 현장에서 컨트롤 할 수 있었습니다. 초기에는 한미글로벌의 CM도 같이 근무하면서 각종 시공의 기반이 되는 DATA를 현장직원들에게 제공하는 조직도 두고 있었습니다. 직원은 잠깐이라도 같이 지냈던 동료들을 합치면 약 150여 명이 현장을 거쳐갔고, 초창기에는 기라성 같은 선배님들이 여러 분 계셔서 배울 점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협력사 직원까지 합하면 1일 최대 근로자가 무려 2천 명 가까이 되기도 했습니다. 현장 분위기는 당시 누구도 경험해 보지 못한 아시아 최고(最高) 높이의 주거건축물을 시공하는 것에 대해 기대가 컸던 만큼 부담도 적이 않았습니다. 시행사와 감리단을 비롯해 각종 대외 기관들도 처음 접해보는 상황이니 얼마나 많은 관심을 보였겠습니까?
해운대 두산위브더제니스는 당시 대내외적으로 어떤 평가 및 의미를 갖고 있는 현장이었나요?
항상 ‘최고’라는 단어가 따라다녔습니다. 방문, 점검, 관람, 평가 등등 최고의 현장에서는 공사가 어떻게 진행되고 또 관리되는지 누구나 궁금해하고, 한번쯤 현장을 직접 방문해서 보기를 바랬습니다. 지금도 초고층인 해운대 두산위브더제니스 시공에 대해서 궁금해하시는 기술자 분들이 많으니 말 다했죠 뭐.
근무 중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며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소통’입니다. 당시에는 누구나 처음 경험하는 것이고, 직원들이 무척 많다 보니 의사 결정된 사안이 맨 아래까지 전달되는데 시간이 상당이 소요되어 애로사항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의사소통 방식을 활용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파트별 소모임이었습니다. 대리/사원, 부장/과장, 기계/관리 등등 일과시간 이후에 소단위 모임을 통해 의사소통을 많이 했습니다. 지금도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현장에서는 ‘소통’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트가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1공구, 2공구는 암반까지 토사를 제거하고, 그 위에 콘크리트를 채워 넣는 일종의 치환공법을 적용했는데 당시 콘크리트량이 6,600㎥였던걸로 기억합니다. 암반이 절리가 많은 상태여서 감리단은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지만 설계자가 버즈두바이공사를 담당했던 외국인 기술자라 국내로 불러올 수도 없어 하루가 멀다 하고 감리단과 실랑이를 벌이면서 굴착공사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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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 두산위브더제니스가 본인의 성장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어려운 난관을 극복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자신감’과 최고의 ‘기술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준공을 잘 할 수 있을지 우려했고, 막연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기대는 했지만 실제 공사를 담당했던 한 사람으로서는 너무나 힘든 과정이었습니다. 야간 및 초과근무, 수많은 질책, 책임감 등등 평생 받을 스트레스를 다 받은 것 같았습니다. 이런 힘든 과정을 극복하고 나니 어떠한 어려운 여건에서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기술력은 여러 분야에서 지금도 활용하고 있지만 특히 대규모 현장 관리기술은 누구나 경험할 수 없는 ‘자산’이라고 생각합니다.
준공 당시 소감은 어땠나요?
‘임무완수!’라는 쾌감과 희열도 컸지만 ‘이 지긋지긋한 프로젝트여 안녕~~ 빠이빠이~"라는 느낌도 컸습니다. 다른 프로젝트는 항상 ‘좀 더 잘 할걸’ 하는 아쉬움이 있었는데 해운대 두산위브더제니스는 워낙 힘들었던 현장이라 ‘이제야 끝이구나!’라는 느낌이 더 컸습니다. 그런데 그러면 뭐 하냐고요. 현장 주재 C/S 담당으로 남아서 만 4년 동안 입주민들과 알콩달콩(?) 사이좋게 지냈으니 말이에요.
해운대 두산위브더제니스는 본인에게 어떠한 의미로 기억되는 건축물인가요?
말할 필요가 있을까요? 최고지요. 공사기간 3년 반, C/S기간 4년. 합해서 7년 넘게 같은 현장에서 보냈더니 추억이 깃든 많은 장면들이 눈 앞에 아른거릴 정도입니다. 펜트하우스에서 바라보는 전망, 헬리포트에서 진행됐던 드라마와 영화 촬영, 중앙광장에서 진행됐던 연주회 등등. 최고의 자리에서 최고의 건축물이 되었고, 거기서 살고 있는 최고의 입주민을 만날 수 있게 해준 것이 바로 ‘해운대 두산위브더제니스’입니다.
해운대 두산위브더제니스가 향후 어떤 위상의 건축물로 평가되기를 희망하시나요?
해운대 두산위브더제니스의 위상은 부산을 넘어 국내 최고라고 인정받고 있습니다. 당시 현장에서 동고동락 했던 모든 직원들이 성공적인 프로젝트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 만큼 향후에도 이 같은 위상이 유지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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